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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 재고 148兆 사상최대高물가로 제품 수요 위축원자재 재고 확대도 원인실적·투자심리에 악영향'가격표'에 놀란 소비자 지갑 닫아재고 쌓인 기업, 신제품도 미뤄국내 주요 상장회사의 재고자산이 150조원에 육박했다. 재고자산 통계 작성 이후 최대치다. 인플레이션 여파로 수요가 위축되면서 창고에 쌓아둔 재고가 급증했다는 분석이다. 글로벌 공급망 차질에 대비해 원자재 재고를 늘리는 사례가 많아진 것도 영향을 미쳤다. 불어난 재고자산이 경기 둔화 흐름과 맞물려 기업 실적을 갉아먹을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6일 금융감독원과 한국기업평가에 따르면 지난 3월 말 삼성전자 LG에너지솔루션 SK하이닉스 삼성바이오로직스 현대자동차 등 상위 30대 상장사(금융사 지주사 제외)의 재고자산 규모는 148조4297억원으로 집계됐다. 작년 3월 말보다 39.2%(41조8107억원) 증가했다.이들 회사의 재고자산은 2020년 말(102조3014억원) 100조원을 넘어섰고, 지난해 말에는 131조755억원에 달했다. 올 들어 석 달 동안 재고자산 증가 폭은 17조3541억원으로 분기 증가 폭 기준으로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반도체와 가전 업체를 중심으로 재고자산이 급증했다. 삼성전자는 올 3월 말 재고자산이 45조5907억원으로 작년 3월 말보다 55.4%(16조9708억원) 늘었다. 같은 기간 SK하이닉스(10조3927억원)와 LG전자(10조2143억원)의 재고자산도 각각 68.1%, 27.7% 증가했다.넉넉한 재고자산은 경기가 좋을 때는 실적을 뒷받침하지만, 경기가 나쁠 때는 경기 침체를 부추기는 복병이 된다. 창고에 쌓인 재고가 늘어날수록 기업의 재고 평가손실이 커지고 설비투자를 억누른다. 업계에서는 늘어난 재고가 ‘독(毒)’이 될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 나온다. 지난달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6.0%로 치솟은 데다 올 3분기 경제성장률이 -2.2%(노무라증권 전망)를 기록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어서다.주원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재고자산 부담이 기업의 실적과 투자심리에 악영향을 줄 것”으로 내다봤다.기업 재고 148兆…반도체·가전제품 직격탄매장에 손님보다 직원이 더 많아…반도체·가전·자동차 재고 88兆휴일인 지난 3일 롯데하이마트 사당점. 빌딩 6개 층을 통째로 쓰는 이 매장엔 손님이 거의 눈에 띄지 않았다. 양판점업계 1위인 하이마트는 지난해 4분기 사상 처음 29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한 데 이어 올해 1분기에도 82억원의 영업적자를 냈다. 매장 관계자는 “코로나19 때 가전 소비가 많았지만, 올해는 완전 상황이 바뀌었다”며 “‘소비절벽’ 상황에 직면했다”고 토로했다.최근 가계 씀씀이가 줄면서 기업들 재고 관리에 비상이 걸렸다. 주요 대기업의 재고가 사상 최대인 150조원에 육박한 상황이다. 불어난 재고를 밀어내기 위해 가격을 내리면 실적이 떨어지고 중장기적으론 투자와 고용에도 악영향을 줄 가능성이 높다.○재고지표, 외환위기 수준으로6일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 5월 기준 제조업 재고율(재고/출하)은 114.5%로 집계됐다. 역대 5월 기준으로 코로나19를 겪던 2020년 5월(127.5%)과 외환위기 때인 1998년 5월(137.6%) 후 가장 높은 수치를 기록했다. 재고율은 기업의 제품 재고를 시장에 내다 판 제품의 양으로 나눈 값이다. 팔리지 않고 쌓인 ‘악성 재고’가 얼마나 되는지를 보여준다.
소비재를 판매하는 대기업을 중심으로 재고 지표가 빠르게 악화하고 있다. 삼성전자(47조5907억원), 현대자동차(12조2943억원), LG전자(10조2143억원), SK하이닉스(10조3927억원), 기아(7조7517억원) 등의 재고 물량만 88조2437억원어치(올 3월 말 기준)에 이른다. 작년 말보다 재고 자산이 9조4553억원 늘었다.문제는 재고가 소비로 이어지지 않고 있다는 데 있다. 인플레이션을 감당하기 힘든 소비자들이 앞다퉈 ‘지갑’을 닫고 있어서다. 올 5월 소매판매액지수는 119.6(2015년 100 기준)으로 전달에 비해 0.1% 하락했다. 벌써 석 달째 ‘마이너스’ 행진이다. 현대경제연구원은 비싼 가격표를 보고 놀란 소비자가 소비를 줄이는 이른바 ‘스티커 쇼크’가 현실화했다고 분석했다. 실질 구매력이 훼손된 가계가 먹고 마시는 필수재에만 돈을 쓰고, TV 등 값비싼 제품에 쓰는 돈은 줄인 것이다.○‘보복 소비’에서 ‘스티커 쇼크’로‘보복 소비’에 대한 기대로 평소보다 재고 물량을 더 확보한 가전업체는 골머리를 앓고 있다. 일부 가전 업체는 재고 처리를 위해 신제품 출시까지 미룬 것으로 전해졌다. 시장조사업체 옴디아는 최근 올해 세계 TV 출하량을 종전보다 284만5000대 하향 조정한 2억879만4000대로 전망했다.시장에서는 제조업체들이 경쟁적으로 재고 물량을 털어내는 과정에서 실적이 훼손될 것이란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재고 처리를 위해 가격을 할인하면 수익성이 악화하기 때문이다. 경쟁사의 할인 가격에 맞춰 울며 겨자 먹기로 제품 가격을 내려야 하는 사례도 생긴다. 한 가전업체 최고위 임원은 “점유율이 밀리지 않으려면 손해를 감수하고 가격을 내려 판매할 수밖에 없다”며 “원자재 가격 인상과 물류난까지 겹친 탓에 실적 방어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투자와 고용이 줄어들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이미 생산한 물건도 창고에 쌓이는 상황에서 새로운 설비를 도입하거나 신규 인력 충원에 나설 수 있겠냐는 지적이다. ‘재고 증가→투자·생산·고용 감소→씀씀이 감소→재고 증가’로 이어지는 악순환이 시작됐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통계청에 따르면 제조업 평균가동률은 5월 75.7%로 전달보다 1%포인트 하락했다. 1월(78.6%) 후 하락 추세를 이어가고 있다.투자 심리도 위축됐다. 전국경제인연합회에 따르면 매출 500대 기업 중 100곳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응답 기업의 28%가 올 하반기 투자 규모를 축소하겠다고 했다. 투자 규모를 확대한다는 응답(16%)보다 12%포인트 높았다. 한국은행도 5월 발표한 경제전망보고서에서 올해 설비투자 증가율 전망치를 종전 2.2%에서 -1.5%로 낮춰 잡았다.김익환/박신영 기자 lovepen@hankyung.com<출처 : 한국경제 https://www.hankyung.com/economy/article/2022070610711>